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세트 테이프 (문단 편집) === 개발과 규격 경쟁 === [[필립스]]는 거대한 크기의 [[릴테이프]]를 호주머니에 넣을 수 있게 작게 만들 목적으로 [[오스트리아]] [[빈(오스트리아)|빈]]과 [[벨기에]] [[하셀트]]의 제품 개발 부서, 두 팀을 경쟁시켰다. 오스트리아 빈 제품 개발 부서는 단일 구멍 카세트 테이프를, 벨기에 하셀트 제품 개발 부서는 현재의 카세트 테이프를 개발했는데, 필립스가 후자를 선택해 [[1963년]] 베를린 라디오 전자 전시회에 출품하기로 결정했다. [[1960년]]부터 필립스 하셀트의 제품 개발 부서에서 책임자로 근무했던 [[네덜란드]] 사람인 루 오텐스([[https://nl.wikipedia.org/wiki/Lou_Ottens|Lou Ottens]], 1926~2021)가 카세트 테이프 개발 프로젝트를 지휘했다. [[축음기]]와 [[릴테이프]] 녹음기를 개발한 경험이 있는 10~12명의 개발자들과 필립스 [[에인트호번]] 연구소와 함께 개발했다. 이렇게 탄생한 카세트 테이프는 [[1963년]] [[베를린]] 라디오 전자 전시회에서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이게 처음에는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여러 카세트 테이프 규격들이 난립하고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서독의 라디오 회사인 [[그룬디히]](Grundig)와 텔레풍켄(Telefunken), 그리고 음반 회사였던 RCA 빅터(RCA Victor)와 영국 데카 레코드(Decca Records)에서 음반을 내놓은 DC-인터내셔널(DC-International) 카세트 테이프 규격은 필립스에게 가장 위협적이었다. 그러던 도중 [[소니]]는 1957년에 내놓은 휴대용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1960년대 중반까지 팔려 나갔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둔 상태였는데, 1965년 [[오가 노리오]]는 당시 필립스 아시아 지부 사장이었던 비스 데커(Wisse Dekker)를 만나 서독 그룬디히의 카세트 테이프 시스템을 들이기 위해 그룬디히의 창업자였던 막스 그룬디히(Max Grundig)와 직접 협상을 벌이고 있다며, 필립스에게 특허료를 포기하면 필립스의 카세트 테이프 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필립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이후 [[파나소닉|마쓰시타]] 같은 다른 라디오 회사들에게 무료로 기술을 제공하면서 카세트 테이프 규격 경쟁에 성공을 거두었다. 이것이 1960년대 카세트 테이프 매체 규격 경쟁이다. 반면 그룬디히의 DC-인터내셔널 카세트 테이프 규격은 1965년에 발표했으나, 불과 2년 만인 1967년 텔레풍켄에서 지원 종료를 선언하면서 패배했다. 필립스는 당장의 특허료를 포기한 이후 엄청나게 큰돈을 벌었고 오텐스는 승승장구해 필립스 이사를 비롯한 고위 간부까지 승진하다가 [[1986년]]에 정년퇴직했다. 또한 이 때 맺은 필립스와 소니의 관계는 [[컴팩트 디스크]] 규격 공동 개발로 이어진다. 루 오텐스는 카세트 테이프가 복고풍으로 다시 유행하자 CD보다 음질이 떨어지는데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루 오텐스는 2021년 3월 6일, 향년 94세로 세상을 떠났다. 다만 후술하겠지만 고급형 카세트 테이프는 CD보다 음질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